'하나님'인가, '하느님'인가

2014.08.05 02:28

Namorecorder 조회 수:6249

  이 글은 <'바하'인가 '바흐'인가>의 속편이 아닙니다. 갑자기 인터넷 모처에서 하나님이네 하느님이네 하는 말이 보이길래, 또 오래전에도 하나님이 맞고 하느님은 이상하다는 말들이 오간 적이 있어서 한 번 써봅니다.
  내용 중에 연도가 부정확하거나 일부 사실과 다른 지엽적인 문제는 있겠지만 차차 수정하기로 하고 일단 곧바로 써 내려갑니다.
  1800년대의 성경 번역본에는 하나님과 하느님이 섞여있습니다. 그 때는 표준어에 대한 개념없이 익숙한 대로 말하고 기록하던 때였습니다. 신구약 성서가 완역된 것은 1911년이었고 1938년에 1911년의 번역을 개정한 개역이 나왔는데 이전 것은 구역(옛번역)이라고 부릅니다. 이 구역과 개역에서 하나님이 쓰이면서 하나님이 일반화 되었습니다. 1952년에는 이 개역이 맞춤법에 따라 수정되었지만 하나님은 수정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날님에서 하느님은 하늘님에서 'ㄹ'이 탈락한 말입니다. 지역에 따라 하늘과 하날이 다르게 쓰였는데, 1933년에 맞춤법표준안이 나오면서 서울 지역의 말인 하늘이 표준어로 채택되었고, 개역의 하나님은 사투리로 판정받았습니다. 개역의 전신인 구역이 나올 때는 표준어의 개념이 아예 없었고 개역이 나올 때는 표준어규정이 나온 이후지만 그 표준어라는 것이 전국적인 합의로 결정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별다른 영향력이 없었습니다.
  초기 신학자, 목사들 중에는 평안도와 함경도 말을 쓰는 사람들이 많았고 영향력도 컸습니다. 그래서 구역과 개역은 북쪽 지역 특히 평안도 지역의 사투리가 많이 반영되었고 양반 사회의 언어도 많이 쓰여서 평안도 출신도 아니고 양반 출신도 아닌 사람들에게는 개역이 매우 난해한 번역본이 되었습니다. 1998년에는 개역의 평안도 사투리와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 등을 소폭 수정한 개역개정판이 나왔습니다.
  공동번역(신약은 1971년, 신구약 전서는 1977년)에서는 표준어를 따라 하느님이라 번역했는데, 개신교와 가톨릭이 공동으로 쓰기로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서 가톨릭에서는 하느님,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이라 쓰면서 일부 대립적인 면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순진하고 용감하게도 이러저러한 신앙고백적인 주장도 하지만, 하나님과 하느님의 사이에는 사투리와 표준어라는 국어학적인 차이밖에 없습니다. 물론 지금에서는 하나님을 사투리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젠 사투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을 표준어인 하느님으로 쓰자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저도 하나님이라고 쓰고 이것이 매우 익숙하지만, 윗대갈님들이 합의해 주시면 당장이라도 하느님이라 바꾸겠습니다. 하나님이든 하느님이든 이젠 습관대로 그냥 그렇게 말하고 쓰면서, 열심히든 대충이든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살아갑시다.


/이/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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