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학시절의 뮌스터 이야기

2016.11.29 03:26

이성실 조회 수:7756

다음 글들은 독일 유학시절에 썼던 것입니다. 옛날에 있었던 개인홈페이지 올리느라 조금 썼던 것 같습니다. 그 홈페이지와 함께 없어진 듯 잊고 있었는데 발견되어서 한번 올려봅니다. 2000년도쯤에 쓴 것 같습니다. 여러 편의 글을 이어 올립니다.


  뮌스터는 독일 북서부 지역에 있는 주민 27만 명 정도의 도시이다. 국내의 지방 거점 도시 정도의 규모 쯤 될까? 뮌스터는 시 중심을 이루는 부분과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작은 구역들로 구성된다. 별로 크지 않은 도시지만 종합대학이 있고 음악대학과 미술대학이 따로 있다. 음악 대학이 올해로 문을 닫고 종합 대학 내의 음악교육과로 통합될 예정이다. 뮌스터가 속해 있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가 비록 독일 내에서는 가장 부유한 주 정부이긴 하지만 그 많은 대학을 유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래서 학과나 학부, 대학을 점차 축소, 통합, 폐지해 나가고 있다. 기차로 50분 거리에 잇는 도르트문트의 음악 대학은 올 봄에 완전히 문을 닫을 참이라서 학생들과 교수들은 여러 도시로 흩어지고 있다.

 

  오늘은 합주단 어르신들과 함께 첨으로 회식을 하고 왔다. 합주단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지 거의 3년 쯤 됐지만 회식은 처음이다. 그 동안 나 빼 놓고 몰래 모였든지 아니면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서 회식다운 회식을 한 번도 못한 건지. 그동안 연주 몇 번 했던 것에 사례비가 조금 나와서 한바탕 회식을 한 것 같았다.

  독일어를 잘 못하는 나는 말은 거의 못 꺼내고 그저 듣기만 했는데, 당연히 못 알아 듣는 얘기가 더 많았지만 그래도 분위기 안 깨려고 같이 웃어주고, 호응해 주느라고 좀 고생스러웠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가 오가면서 가정 얘기도 나왔다.

  꽤 젊어 보였던 소프라노 리코더 부는 할머니는 얼마 전 친구들과 아비투어(독일의 대학 입할 자격 시험) 50주년 기념 파티를 했단다. 그 할머니가 말하기를 자기가 가장 나이 많을 거라고. 우리 브라일만 할머니는 은퇴한지 4, 5 년 되었으니 거의 70에 가까울 것 같다. 그래도 다들 정정하다. 부부가 같이 오시는 프리데만 할머니, 할아버지는 큰 손자가 열일곱 살이라고.


   뮌스터는 주민 27만 정도의 도시인데, 예상보다 고음악 연주회가 좀 많다. 뮌스터 음대에는 리코더 전공과 쳄발로 전공, 트라베르소(바로크 플륫) 전공이 있지만 쳄발로 전공자는 소수고 트라베르소 전공의 거의 없는 것 같고 리코더 전공자는 10여 명 있다. 한마디로 고음악을 하기에는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음악 연주 단체가 꽤 있고 그 중 순수 아마추어 그룹도 있다.

  내가 매주 연습하러 가는 합주단의 단체 이름은 르레상스 슈필크라이스(르레상스 합주단)’로 르레상스 레퍼토리를 주로 다룬다. 아마추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나이든 아주머니도 몇 명 있다. 모두 열두 명 가량. 리코더와 겜스호른(동물의 뿔로 만든 관악기)를 주로 연주하고 때에 따라서 크럼호른(진짜 르네상스 악기)도 가미한다. 르네상스 음악을 연주하지만 고음악 연주단체라고 부르기는 좀 어렵다.

  우리 브라일만 할머니가 이끄는 또 다른 단체는 거의 르네상스 전문 연주단으로 불 수 있다. 브라일만 할머니는 르네상스 악기들을 르네 클레멘치치에게서 배웠고 또 다른 두 분의 할머니(회퍼 할머니와 리스 할머니)는 리코더를 전공했고 실비아 아주머니는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아마추어다. 크럼호른, 코르나무제, 코르트홀트 같은 진짜 르네상스 악기와 리코더도 카나시와 킨제커 같은 르네상스 리코더를 사용한다. 크럼호른과 코르나무제는 음정 잡기가 참 힘들다. 호흡의 강약에 따라서 음정이 미세하게 달라지는데, 호흡의 세기를 기억해 두고 연주하는 것이다. 악기가 바뀌면 바뀐 악기에 또 적응해야하고. 요즘에 복제되는 악기는 음정도 좀 더 정확하고 소리도 잘 난다는데, 그 할머니들은 수십 년 전에 산 악기를 그냥 쓰고 있다. 다른 이유는 없고 비싼 악기 이제 와서 다시 사기가 뭣해서이다. 완전히 은퇴할 날도 멀지 않았고 불편해도 충분히 견딜 만 하니까. 문제는 나나 실비아 아주머니 같은 사람이 같이 연주하게 될 때는 고통의 연속이다. 열심히 불다보면 음정이 흐트러져서 다시 음정 잡기 연습을 해야 되니. 한 두 번도 아니고. 악기 하나가 50만원에서 100만원 정도 하는데, 소프라노부터 테너까지 다 구비하려면 수백만원이 든다. 그러니 그냥 참을 수밖에.

 

  뮌스터 대학 음악학과 내에도 고음악 연주 그룹이 있다. 매 학기 주제를 가지고 학구적으로 연주를 한다. 나는 딱 한 학기 참여해서 고생고생하며 겨우 따라갔다. 대상은 제한 없었고 거의가 음악학과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참여했던 그 학기에는 리코더 네 명, 감바 네 명으로 우연찮게 멤버 구성이 딱 좋았다. 4성부의 곡을 리코더와 감바가 한 성부 씩 맡아서 하기가 좋았다. 나는 브라일만 할머니기 빌려준 르네상스 리코더(테너는 킨제커, 알토는 이름 없는 르네상스 리코더)로 테너와 알토를 불었다. 감바를 거기서 생전 처음 봤는데, 나름대로 소리가 매력 있었다. 소프라노 감바를 하던 할아버지는 베이스 감바도 같이 했다. 베이스 감바를 하던 리스 할머니는 알고 보니 리코더 전공을 했고 리코더 교사로 활동하는 분이었다. 이 분을 그 다음해에 브라일만 할머니의 합주단에서 다시 조우했고, 그 이후로 이 할머니는 브라일만 할머니의 합주단에서 계속 연주를 하고 있다. 뮌스터 음악학과 합주단은 학기가 끝나면 그것으로 그 학기를 끝낸다.

  음악학과의 합주단을 이끌던 크라이튼 씨는 르네상스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보컬 그룹을 이끌고 있다. 해마다 몇 번 정기 연주를 하는데, 르네상스 시대의 마드리갈을 연주한다. 크라이튼씨도 카운터 테너를 맡아서 직접 노래한다.


  뮌스터엔 토마스 퀴클러라는 젊은 리코더 연주자가 있는데 쾌 실력이 있다. 음악가로 먹고 살아가느라고 고생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몇 번 레슨을 받느라고 만났는데, 매우 친절하고 실력이 있는 것 같았다. 뮌스터에서 휜텔러 교수 밑에서 트라베르소(바르크 플륫), 제롬 미니스 교수에게서 리코더를 배웠고 이탈리아 밀나노에 가서 리코더를 공부하고 왔으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전문연주자 과정을 마쳤다고 했다. 퀴클러 씨도 류트, 쳄발로 연주자를 데리고 실내악단을 하나 구성해서 연주활동을 하고 있고, 얼마전에는 르네상스 플륫 4중주 연주를 열기도 했다. 그 때 바뻐서 못 가봤지만, 르네상스 플륫만 가지고 연주를 한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퀴클러 씨는 르네상스 플륫을 가진의 특기로 하려한다고 했다.


  뮌스터 지역에서는 고음악 그룹의 연주가 자주 있는 것 같다. 브라일만 할머니랑 같이 연주하는 회퍼 할머니도 아마추어 르네상스 그룹을 이끌고 있다. 얼마전 브라일만 할머니는 어떤 플륫 연주자랑 록셀이란 지역의 작은 교회에서 프랑스 바르크 음악을 연주한 적이 있다. 브라일만 할머니는 플륫과 리코더를 번갈아가며 독주, 이중주를 했고 리코더 독주 소나타도 몇 곡 연주했다. 쳄발로는 브라일만 할머니 집에서 직접 가져왔고, 베이스 감바로 저음을 연주하는 정식 바로크 음악이었다. 한국에서는 바로크 음악 연주가 좀 드문데 이렇게 제대로 된 편성의 연주가 뮌스터의 외곽에 있는 마을에서도 연주되고 있었다. 사실 실력이 없어서 그렇지, 나도 415Hz 피치 리코더로 쳄발로 반주에 맞춰 여러 번 연습을 했다. 심지어 교회 오르간 반주에 맞춰 연습해 보기도 했고. 한국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고음악 연주가 독일에서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작년 에쎈 음대에 갔을 대, 마침 리코더 전공하던 학생의 졸업 연주가 있어서 구경도 해봤는데, 그야말로 화려했다. 현란한 현대곡과 함께 바로크 음악을 연주했다. 바로크 피치로 류트의 저음과 쳄발로 반주로 쿠프랭의 모음곡을 연주했고, 르네상스 피치로 르네상스 리코더 카나시를 들고 르네상스 음악을 연주했다. 그러다 보니 무대에 늘어선 쳄발로만 세 대였다. 440Hz, 415Hz 그리고 466Hz로 짐작되는 르네상스 쳄발로. 역시 규모가 큰 음대는 졸업 연주 스케일로 큰 것인지

 

*이 글을 썼을 때는 뮌스터 대학에서 음악학을 공부할 때였고 이후에 에쎈음대에 진학해서 울리케 폴카르트 교수에게 리코더를 공부했다. 에쎈음대 또는 에쎈국립음대는 한국 유학생들이 편의상 붙인 이름이고 폴크방호흐슐레 즉 에쎈 폴크방종합예술대학이 정확한 번역이다. 다른 지역은 음악대학만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대부분인데 에쎈 폴크방종합예술대학은 음악, 무용, 연극이 분야로 나뉜다. 옆 도시인 두이스부룩에 음악대학이 있었는데 내가 에쎈폴크방 종학예술대학에 다닐때 에쎈에 병합되고 두이스부룩 음대는 에쎈음대의 분원이 되었다. 덕분에 두이스부룩에 있는 리코더교수님이 에쎈으로 옮겨와서 에쎈에는 리코더 교수가 두 분이나 있고 전공 학생도 많은 특이한 대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