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사의 몇 가지 단면에 대하여

2016.12.03 00:46

이성실 조회 수:6707

  일제 말기의 한국문학은 양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일제 말기의 한국문학을 민족주의 시각으로 보면 순응과 저항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순응은 절대 다수이고 저항은 극소수가 된다. 오늘날 이러한 대립적 시각으로 양분을 하고 저항 의식을 문학에 드러낸 작가만을 추앙한다면, 한국문학의 영역은 매우 축소될 수밖에 없다. 또한 그 시대의 특수한 상황을 배제하고 순응의 작품들의 배격하고 저항을 작품들에게만 가치를 둔다면, 오늘날 작품 활동하는 수많은 작가들 중에, 몇이나 시대의 억압에 저항을 하며 정의롭게 자기 주체성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있는가, 다시 말하여 억압된 환경에서 어떤 작가들이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일제 말기 한국문학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저항 의식이 뚜렷이 드러낸 작품들 외에도 내면적 저항, 저항을 드러내지 못하는 개인적 갈등을 드러내거나 숨긴 작품들을 면밀하게 고찰하고 연구해야할 것이다. 작가들의 순응이 현실에 대한 절망에서 나오는 것인지, 일제의 정책에 호응하여 적극적으로 문학적 태도를 바꾼 것이지 좀 더 정교하게 작품을 분석해 봐야할 것이다.

  한설야의 <이녕>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이 주인공 민우가 생활에서 적극적이지 못하고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념을 택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해야하는 것이고 작가는 민우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이념과 생활, 현실과의 갈등을 드러냈다고 보는 것이다. 이태준의 <토끼이야기>에서 현 부부의 상반된 태도를 통해서 현실과 이념 또는 생활과 비현실적인 관념성을 각자의 시작과 태도를 통해 객관적으로 드러내며 갈등과 모순에 대해 작가의 의도를 간접적으로 나타내며 독자에게 판단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문학적 친일과 사회·정치적 친일은 어떻게 다른가

  문학에서의 친일은 사회 일반에서 인식하고 청산을 요구하는 친일과는 사뭇 양상이 다르다. 두 측면에서 가장 큰 차이라면 문학의 친일에 대해 더 가혹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한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인 지위에서 매우 낮은 위치에 처해 있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고도의 도덕성을 요구받는다. 일제 강점기에 친일로 인해 많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이익을 받은 인물들에 비하여 작가들은 경제적 사회적 혜택은 적고 강한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단편적 시각으로 작가의 친일을 옹호하거나 평가의 주요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작가는 그 누구보다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한국어를 지키고 살아온 투사들이라는 점을 감안해야할 것이다.

  이광수는 대표적 친일 작가로 알려졌다. 그러나 모국어가 일본어가 아니었던 태생적 한계 때문에 그리고 생계 수단으로 문학을 택했기 때문에 한국어로 글을 썼다. 매우 모순되지만, 이광수는 한국인의 정체성의 요체가 되는 한국어 수호를 위한 가장 위대한 작업을 수행한 인물로 평가될 수 있다. 만일 이광수가 일제 상황에서 한국어를 버리고 문학도 버렸다면 그리고 많은 작가들이 그런 길을 갔다면 한국어는 적잖이 쇠퇴를 했을 것이고 한국인으로서 정체성도 더욱 빨리 희석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친일 작가들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고 현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 했더라도 쉽게 면죄부를 줄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친일의 영향이 작가들과 문학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하더라도 친일의 부정적 영향은 사회와 정치의 현장과 현실에 만연하다. 친일을 통해 부도덕한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얻은 사람들이 있고 그 후손들이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오로지 문학에서만 친일을 온당히 평가하고 그 역할을 내세우게 되면 친일에 적극적이었고 인물들과 그 혜택을 계승한 후손들의 부도덕한 행태와 유산을 대신 변명해 주고 정당성의 꼬투리로 이용될 수 있다.

  문학사가 학교의 국어 교과목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수많은 초중고의 어린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그들의 작품을 읽고 그들의 삶에 영향을 받는 현실에서는 문학의 교육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아직은 문학과 친일을 오로지 문학적인 측면에서만 파악할 수 없는 현실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문학이 사회를 이끄는 계몽적이고 선도적인 영향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문학은 친일에 대해 더 엄격하게 평가하고 더 엄정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우리 한국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회복하는 날까지 친일과 문학의 관계를 단선적으로 그리고 문학의 측면에서만 고려할 수 없는 것이다.

 

  해방공간에서 문학의 정치화의 문제에 대하여

  문학과 정치는 분리되기 어렵다. 모든 사람들이 정치와 분리되어 살지 못한다. 정치는 곧바로 인간 본연의 의지를 구속할 수도 있고 자유롭게 뜻을 펼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우리 민족은 유사 이래 근대까지 사상의 자유를 누려본 적이 없었다. 억압적이고 봉건적인 조선시대가 끝나고 자유사상과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불타오르던 시기에 외세의 강압적인 지배가 있었고, 외세의 강압적인 지배는 세계사의 정치 논리에 따른 경쟁으로 자율적이지 못한 해방을 맞았다. 비록 자율적이지 못한 해방이었으나 그나마 우리나라 민중들이 얻은 최소한의 자유도 유사 이래 가장 커다란 것이었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분단의 지속, 남북에서 독재자들의 출현은 근대 계몽기 이후로 간절히 열망해 오던 자유에 대한 열정을 계속 눌러왔다. 작가는 자신의 사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다. 자신의 사상을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간접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매우 평범한 사람이 세상을 보는 시각을 글을 표현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다. 작가는 평범한 모든 사람들이 열망하는 생각의 자유를 대변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생각의 자유를 원하지 않는 소수에 의해 지배되고 강요되며 이끌려 간다. 작가들은 어쩔 수 없이, 작가라는 직업을 갖는 순간부터 생각을 이념과 사상으로 규정한 정치 세력의 주목을 받으며 그 혼동 속에서 자리를 잡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학은 현실과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해방 공간에 놓인 작가들이 분단과 전쟁의 참혹한 상황 그리고 외세의 개입과 독립 그리고 자유와 민주에 대해 언급하고 작품 속에서 그 열망을 분출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해방 공간에서 남로당의 입장에 서고 북로당의 입장에 서고 미제국주의 입장에 선 작가들의 처지를 비판하기 어렵다. 그 누구라도 자신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작가가 된다면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편가르기를 강요당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안일을 지키고 권력의 편에 선 작가들을 경계하고 그들의 작품이 과도하게 소개되고 일방적으로 가르쳐지는 것을 감시해야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해방이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정치적 혼란이 정리되고 생각의 표현이 자유롭고 민주주의가 찾아오는 날까지 기다려야할 것이다.

 

/이/성/실/ 20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