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존 로스의 한국어 성경 번역한글의 뛰어난 기능을 인지한 최초의 외국인


 

  존 로스(John Ross, 한국명 라요한, 1842-1915)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연합 선교회 소속의 선교사로 1872년에 당시에서는 만주라고 불렸던 중국의 동북부 지역에 파송되었다로스는 당시에 아시아 지역에 파견된 선교사들과는 사뭇 달랐다로스는 노방 전도나 전도 여행과 같은 전통적인 선교 활동보다는 한글 성서 번역과 역사서 기술과 같은 학구적인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로스는 한국인들에게 기독교의 교리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선교사들이 한국문화와 역사를 이해해야 되고 한국인들이 평소에 쓰는 말로 성서가 번역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존 로스는 외세 앞에 스러져가는 동양의 작은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왜 관심을 기울였을까존 로스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스코틀랜드의 작은 마을이었다로스는 이 작은 마을에서 영어가 아닌 게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였고 학교에 가서야 영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로스에게는 영어가 외국어나 마찬가지였다.

  로스는 중국에 처음 파견된 지 1년 만에 중국어로 첫 설교를 하였다다른 나라의 언어에 대한 존중과 그 언어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알려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로스는 만주를 오가는 조선인 상인들을 통해 처음 한국어와 한국이란 나라를 알게 되었다. 1876년 이응찬이라는 조선인 한약재 상인은 로스의 첫 번째 한국어 선생이 되었고 이응찬은 로스에게 영어를 배운다로스는 이듬해에 한국어 입문(Korean Primer)'을 출판했고 이응찬백홍준서상륜이성하 등의 도움으로 이 해에 한국어 성경 번역을 시작한다.

  로스의 한국어 입문에는 그들의 알파벳은 너무나 아름답고 간결하여 30분만에 이 글자를 충분히 습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존 로스는 한글의 위대한 체계와 기능에 대하여 인지한 최초의 외국인이었고 당시의 그 어떤 한국인보다도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한국인들은 자국의 문자가 있다는 사실을 낯선 사람들에게 인정하기를 꺼리며 늘 한자를 쓴다고 말한다한글의 존재가 알려진 뒤에도 가르쳐 주기를 꺼릴 뿐 아니라 그 글로 말을 쓰는 것은 더욱더 싫어한다… 이들은 자국의 언어로 읽고 쓰는 능력이 교육받은 사람의 자격을 부여하는 충분한 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로스는 스코틀랜드 선교부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한국어 성경 번역 작업을 중단하지 않았다마침내 1882년에 누가복음서와 요한복음서가 차례로 출판되었고 1887년에는 신약성서전서가 출판되었다그 밖에 동아시아 역사(1877)’, ‘한국 역사(1879)’ 등을 썼고 1900년에 은퇴하여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존 로스의 한국어 성경 번역은 이후 다른 사람들에 의해 개정이 되었고 번역 작업에 대한 모범이 되었으며한국어 사전 편찬의 계기가 되었다또한 성경 번역 작업 과정에서 점차 띄어쓰기와 맞춤법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싹이 텄고이후에 주시경, 김윤경최현배 등의 한글학자들의 한글 연구에 직접간접적으로 자극이 되었다.

  당시 조선 정부는 한문을 공식 문자로 사용하고 있었고 배우기 어렵지 않았던 한글도 제대로 보급되지 못했고체계적인 연구는 전혀 없었다선교사들은 한국어를 배우고 한글을 익히는 과정에서 한글의 체계적인 기능을 발견했고 맞춤법띄어쓰기문체 등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고 당시에 편찬된 사전은 이후에 일본의 영향으로 편찬된 사전과는 달리 한국어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선교사들이 한국어와 한글을 대하는 태도는 조선 지식인들이 한국어와 한글을 대하는 태도와 매우 달랐고, 1900년대에 들어서는 한국어와 한글에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는 한국인들이 이전 수백년과 비교하여 매우 두드러 진다. (2011.10 이성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