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미학-체득과 터득

2019.09.28 18:45

나모리코더 조회 수:712

체득과 터득

  詩(작품, 예술작품, 인식행위의 결과물)는 작가의 의도를 떠나 사물(대상)이 되어 적막(고요; 어둠; 인식 이전의 상태) 속에 자리 잡는다. 내가 적막 속에 놓은 시를 읽는 것은 대상이 된 사물인 시와 관계를 맺는 것이고 상호 작용을 하는 것이고 인식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 대상에는 작가의 뜻이 담겨 있지만 그 뜻은 온전히 드러나 있지는 않다. 내가 그 뜻 알기 위해, 알아내기 위해, 다가가기 위해 애쓰는 것은 터득의 과정이며 터득을 이루고 체득을 하는 것이다.

  사물로 어둠(적막과 고요) 속에 존재하던 그 대상은 마침내 뜻을 드러내고 적막 속에서 나와 명백한 대상이 되는 것이며 이때에 비로소 그 대상은 시(작품, 예술)가 되며 나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제 내게 그 뜻이 전해진 대상은 문자만 남는 것이고 소리만 남는 것이며 형태만 남는 것이다. 그저 문자로 기록된 글자이며 악보이며 그림일 뿐이다. 혹은 외우고 있는 시이며 악곡이며 기억하고 있는 그림일 뿐이다. 매체에 담긴 자료이며 세상에 떠도는 잘 보관된 대상일 뿐이다. 대상은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전해지고 존재할 수 있으며 종이에 기록될 수 있고 온갖 매체에 담겨 전할 수 있다. 대상은 아무리 퍼올려도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것이며 목마른 사람에게는 생명이 되는 것이며 배부른 사람에게는 필요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온전한 관계 맺고 난 뒤에, 온전한 터득과 체득이 있은 뒤에 다시 적막으로 되돌아가 어둠 속에 놓여 뜻이 옮겨져 다시 인식주체와의 관계를 기다리는 것이다. 뜻은 내 마음 속에 옮겨와 머무는 것이기에 대상은 다시 사물일 뿐이고 겉만 남은 것이다. 더 이상 뜻이 옮겨진, 겉만 남은 사물에 연연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관계를 맺고 버려지는 것은 아니며 집착을 하지 않고 쌓아 두지 않는 것이다.

  어둠 속에 놓여 뜻이 옮겨지기를 기다리고, 뜻을 담고 있던 대상(작품)은 뜻이 옮겨지면 다시 원래 있던 어둠 속으로 돌아가서 다른 개인과의 관계를 기다린다. 나의 터득이 온전하지 못하거나 체득이 지속적이지 못하면 다시 그 대상을 적막 속에서 불러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뜻은 밝음 속에 옮겨져서 나와 다시 관계를 맺고 다시 내 인식의 영역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성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