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마태수난곡 연주

2014.08.09 00:29

Namorecorder 조회 수:2382

  마태수난곡이 1829년에 쩰터와 멘델스존의 노력에 의해 멘델스존의 지휘로 라이프찌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재연되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쩰터의 기록에 의하면 이 마태수난곡이 1729년에 작곡되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쩰터가 1729년 판 마태수난곡 악보를 가지고 있었는지, 혹은 1729년의 초판 악보를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음악 학자들의 연구 결과도 그리 명확하지 못하기 때문에 쩰터가 언급한 1729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근거와 추론을 통해 초판이나 초연을 1727년부터 1730년 안팎까지 잡고 있다. 한 마디로 초연을 1729년이라고 딱 잘라 말할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마태수난곡은 여러번 연주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1736년의 정밀한 필사본이 전해지고 1740년 경의 초판본에서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바흐 제자의 사본도 전해진다. 1736년의 사본은 매우 정교하고 1740년대에 필사된 것에 비하여 변개된 것이 매우 적다. 바뀐 것은 베이스의 아리아 Ach, nun ist...가 알토 아리아가 되었고 19번 O schmertzt의 오블리가토 악기가 트라베르소에서 리코더로 바뀐 것, 또 56,57번에서 감바 대신 류트로 바뀐 정도이지 내용상 바뀐 것은 없다. 요한수난곡이 초연 이후 연주될 때마다 눈에 띠게 바뀌었고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나 미사 b단조 등이 기존의 곡에서 패로디한 것에 비하면 이렇게 변화가 적다는 것은 바하가 이 작품의 완성도를 얼마나 높게 보았는가하는 방증이 된다. 1736년의 정밀한 자필 사본도 이에 대한 방증이 된다. 

  마태수난곡 전곡연주가 음반으로 처음 나온 지는 언제 인지 모르겠지만, 교회음악 다운 연주가 처음 나온 것은 1940년말 토마스 교회 칸토어 귄터 라민 지휘로 토마스교회 합창단이 부른 음반인듯 한다. 이 음반은 요즘 덤핑으로 전 세계 시장이 깔려 있어서 싼 값에 쉽게 살 수 있다. 이미 이 음반의 음원에 대한 저작권 시효가 끝났기 때문에 누구라도 복각해서 팔 수 있기 때문에 이 음반의 복사는 불법이 아님을 사족으로 첨가. 또 60년대로 기억되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합창지휘자 마우어스베르거가 드레스덴 십자가합창단을 이끌고 녹음한 마태수난곡 전곡도 있다. 70년대엔 슈투트가르트 힘누스 소년합창단이 노래한 마태수난곡도 있고. 이 정도가 초기에 나온 그래도 주목할 만한 교회의 전통에 따른 마태수난곡인 것 같다. 이 음반들은 여전히 팔리고 있어서 맘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다. 물론 국내에 깔린지도 십년은 되었다.

  아르농꾸르 지휘의 마태수난곡(1971년경)은 반주를 바로크 시대의 오리지널 악기로 연주한 최초의 음반이었다.  그러나 합창과 독창은 원전과 거리가 멀었다. 앞서 언급한 합창은 그래도 원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아르농꾸르의 합창과 성악은 그렇지 못햇다. 합창은 레겐스부르크 대성당합창단의 소프라노들이, 알토에서 테너까지는 킹스컬리지 합창단이 불렀다. 알토는 소년들이 아닌 카운터테너들이 불렀다. 합창에서 뿐 아니라 아리아도 카운터테너들이 불렀다. 마태수난곡에서는 알토 아리아가 특히 많이 등장한다. 소프라노는 빈소년합창단의 솔리스트를 기용했는데, 주요 아리아 세 곡을 부른 목소리가 서로 다르다. 이 음반에서 복음사가를 부른 쿠르트 에크빌루쯔는 이후 페터 슈라이어와 함께 바하 음악 전문 테너로 음반 시장을 싹쓸이하며 후배들의 등장을 원천봉쇄하다가 결국 은퇴했다.

  90년대에 레온하르트는 튈쯔 소년합창단과 라 쁘띠 방드를 이끌고 마태수난곡을 녹음했다. 당연히 아르농꾸르의 작업에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이 된다. 또 이 때는 아르농꾸르와 합께 녹음했던 칸타타 전집 녹음을 막 끝냈을 때였다. 합창은 독일 교회음악의 전통을 잇는 전형적인 소년합창단을 썼고 반주도 바로크 시대 악기를 재연한 전문 연주팀을 기용했다.합창 수준은 다소 미흡하지만 반주는 그 때까지 나온 어떤 연주보다도 충실하다. 독창에는 슈라이어와 에크빌루쯔가 주름잡던 복음사가 시대가 드디어 겨우 저물고 싱싱한 테너 프레가르디엔이 쟁쟁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이후 바하 테너로는 음반 시장에선 프레가르디엔이 선두에서 질주하기 시작한다. 각종 요한, 마태수난곡 음반에 등장하는 복음사가 프레가르디엔 이름을 보면 수에서 압도적이다. 알토로는 이름만 유명한 르네 야콥스가 노래하고 소프라노는 퇼쯔 소년합창단의 솔리스트가 노래한다. 
  영국의 가디너도 당연히 마태수난곡을 내 놓았지만, 마태수난곡은 씨디 3장짜리이기 때문에 듣고 싶다고 아무때가 마구 살 수 있는 음반이 아니라서 여기선 언급을 생략한다. 그 이후로 원전 악기 반주로 영국식 합창과 카운터테너가 알토를 노래한 음반들이 쏟아져 나왔다. 톤 코프만, 필리페 에르베헤, 프란쯔 브뤼헨 등 아르농꾸르와 레온하르트 밑에서 수업하던 사람들은 모두 독립해서 원전 음악 전문가로 바하 음악 전문가로 나서서 마태수난곡도 녹음했다. 이미 뛰어난 바로크 전문 성악가와 연주가들도 충분히 등장한 상황이라서 하나같이 뛰어난 수준의 연주를 들려준다. 이 중 최근에 녹음해서 주목 받고 있는 것은 에르베헤의 두 번째 마태수난곡인데, 이안 보스트리지가 복음사가를, 안드레아스 숄이 알토를 맡는 등 최고의 스타 연주자들을 모아서 녹음했다.

  음반 평론가들의 작태를 답습하여 추천 및 촌평을 달고 대충 글을 마친다. 

  아르농꾸르의 71년 마태수난곡: 음반의 음질이나 녹음 상태가 안 좋음. 연주 수준도 그저 그럴 수도. 그러나 원전 음악의 원조. 역사성, 원조의 중요성을 따지는 사람에게는 별로 안 비싼 좋은 음반. 테너(에크빌루쯔)와 소프라노(빈소년합창단의 솔리스트들)연주에 매력이 있다고 생각됨.

  레온하르트의 90년 마태수난곡: 녹음 상태도 좋고 연주도 깔끔. 이후에 나온 거의 모든 원전악기 반주의 음반들은 녹음도 잘되고 연주도 깔끔함. 복음사가 프레가르디엔의 노래를 한 번 쯤 들어봐야할 듯. 알토를 부른 코르디에는 별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 않지만 매끈한 음색의 카운터테너. 야콥스는 너무 매끈해서 기름이 묻어남. 그외 성악진도 다 뛰어남, 메르텐스, 에크몬트 등. 소년 소프라노의 기량이 아르농꾸르 음반보다 조금 덜하지만 듣는덴 별 지장 없음. 

  톤 코프만의 92년 마태수난곡: 귀 드 메이가 복음사가를 노래. 바로크 성악계의 부동의 스타 소프라노 바바라 슐릭이 드디어 출연. 카운터테너에 카이 베셀. 예수역에 페터 코이. 또 다른 베이스에 또 클라우스 메르텐스. 슐릭은 이후로 안 나서는 데가 없기 때문에 이름만 들어도 지겨운, 아니 정겹고 익숙한 소프라노.  아마도 지금까지 가장 바쁜 바로크 전문 소프라노로 여겨진다. 카이 베셀은 코프만의 연주에 단골로 출연했는데, 요즘에 음반에서 이름 보기 힘들어졌다. 웬 영문인지 알 수 없고 엄청 궁금하다. 매우 애상적인 목소리의 소유자. 코이나 메르텐스는 슐릭처럼 엄청 바쁜 바로크 전문 베이스들.

 에르베헤의 2000년 연주: 이안보스트리지, 숄 등이 출연한 호화 멤버 그리고 지휘자 이름값 때문에도 화제가 된 음반. 
 코프만이나 가디너같은 스타급 지휘자가 다시 녹음해도 2000년 에르베헤 만큼은 되리라 생각된다. 해석의 차이라고 해봐야 그게 그거고 개성은 지휘자 때문인지 연주자 때문이지 아니면 지휘자가 선택한 연주자들 때문인지 음반마다 다 다르다. 뭐가 낫다고 할 수도 없다. 또 끼리끼리 다 해먹는지 음반마다 별 개성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태수난곡만 몇개 살펴봐서 그렇지, 바하나 바로크 다른 작품까지 놓고 보면 늘 그 얼굴이 이 얼굴.


/이/성/실/ 2001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