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시대에 세계 언어와 문자 시스템, 그리고 우리의 경우 이성실

 

세계 언어들과 생존의 위기

세계 언어의 수는 대략 2000개 정도 추정된다. 방언과 사어까지 포함하면 10000개 가까이 늘어나겠지만 방언과 사어를 제외하고 더 엄격하게 분류한다면 2000개 밑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분류하지 하지 않아도 세계의 언어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백년 정도만 지나면 느슨하게 분류해도 수백 개 정도만 남게 될 것이지만 극단적으로 비판하는 언어학자들은 수 십 개의 언어들만 살아남을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중국을 예로 들면, 중국인의 대다수는 시노-티벳어를 쓰지만 이 시노-티벳어에도 크게 분류해도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10여 가지의 언어들이 있고 계통이 다른 언어들도 매우 많다. 시노-티벳어족의 언어들은 지역에 따라 더 세분하면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수많은 하위 분류의 언어들이 있다. 따라서 중국에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수십개에서 수백개의 언어들이 있지만, 모든 중국인은 공식적으로 중국어를 쓰는 것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중국의 교육받은 사람들은 표준 중국어를 구사한다. 결국 중국어는 표준 중국어로 통일되어 가는 과정에 있고 이 과정은 어린 학생들이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어느 정도 완성이 된다. 실제로, 소수민족의 소수언어들은 이런 과정으로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는데, 사용자가 많은 시노-티벳어 계통의 비표준 언어들도 점차 사용자가 줄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러시아와 남북아메리카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한 남태평양의 많은 언어들을 비롯하여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소수 언어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며 쿠르드어와 같이 수백만 명이 사용하는 언어들도 국가를 이루지 못해 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한 언어들의 위기는 근대화된 교육 시스템과 정보화 시대에 맞물려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보가 생존의 도구가 되는 생존 경쟁의 시대에 정보 획득의 일차적 관문인 언어에서 장벽을 대한다는 것은 절실한 생존의 문제가 된다. 소수만이 사용하고 국가라는 보호해 줄 울타리가 없는 언어 사용자들은 생존의 갈림길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언어를 버리는 것뿐이다.

언어는 생존의 도구이다. 생존을 위해 도구를 바꾸는 것에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다. 다만 강요를 하는 국가 권력을 비난할 수 있겠지만, 국가 역시 교육을 통한 언어 통합이 국가 경쟁이 되기 때문에 섣부른 비난은 해결책이 아니다.

언어를 버린다고 정신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언어가 바뀌었다고 자신의 정신세계가 더러워지거나 황폐화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그 어떤 언어를 사용해도 고귀한 정신을 발휘할 수 있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얼마나 먼 조상에게서 물려받았는지 생각해 보면, 자신도 그 언젠가 오랜 전에 할아버지의 말을 버리고 지배자들의 언어를 선택했을 것이다.

언어의 아름다움과 다양성에 빠져 있는 언어학자라 하더라도 남의 생존에 간섭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저 사라져가는 언어를 기록하고 분석하여 책과 멀티미디어 자료로 남겨 두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언어의 세계화, 세계의 공용 언어

영어는 이미 국제 공용어가 되었다. 그 과정이 어찌했든, 설령 영미가 망하고 중국이 대세를 잡는다 해도 영어를 중국어가 공용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이 보인다. 이미 영어로 된 문서가 인터넷을 장악하였고 영어는 학계와 재계의 공용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수십 년 간 쌓은 정보와 자료를 포기하고 공용어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영어가 먼 훗날까지 공용어를 지위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충분하고 설득력 있는 주장이지만, 쌓은 정보를 근거로 말하기는 어렵다. 정보란 것은 시의성을 갖추어야하는 것이고 자료라는 것도 재활용 가치를 지녀야한다. 그런데 정보는 끊임없이 생산되며 과거의 정보는 의미를 잃고 새로운 정보가 요구된다. 자료 역시 끊임없이 쌓여가면서 쓰레기처럼 취급되기도 하고 인터넷을 통해 공급되는 자료는 신뢰성을 확보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 새로운 세대들이 원하는 것은 낡은 과거의 자료가 아니며 쓰레기산처럼 쌓여 있는 정보가 아니다. 이제는 최근 정보와 정리된 자료만을 요구한다. 새로운 자료와 정보가, 중국어가 되든 한국어가 되든, 새로운 언어로 소개되는 상황은 충분히 가정할 수 있다.

영어가 국제어로 통용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편이다. 많이 알려진 언어들 중에서는 비교적 쉬운 언어에 속하기 때문이다. 영어에는 특이한 발음도 있지만 발음자체가 그리 어려운 언어는 아니다. 발음도 영국과 미국이 다르고 그 외 나라들이 서로 다른 방언을 쓰기 때문에 발음이 다른 것이 의사소통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영어는 인도-유럽어에 속하지만 인도-유럽어의 가장 큰 특징이 격 체제와 어미 굴절이 사라져서 중국어와 닮은 고립어가 되었다. 따라서 영어는 말하고 쉽고 쓰기 쉬운 언어가 된 것이다. 복잡한 철자가 걸림돌이 되겠지만 컴퓨터의 도움으로 그런 문제도 해결이 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쓰는 중국어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에 국제 공용어 후보로 오르내린다. 베이징 말은 한정된 공간에 쓰는 말이었지만 중국정부의 근대적 교육으로 인해 중국 전역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변모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제도권 교육이 미치지 못하는 나라에서 중국어가 통용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중국 문자는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 베트남까지 포함했던 한자문화권은 이미 그 범역이 축소되어 버렸거나 사라졌다. 적당히 교육받은 일반인들의 능력을 기준으로 한자문화권을 설정한다면, 일단 현대 중국어를 쓰는 중국은 배제될 수밖에 없고 타이완과 한국과 일본만 남게 된다. 타이완이나 홍콩, 싱가포르는 표준 중국어가 통용되는 곳이며 원류가 중국이다. 한국은 점차 한자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한자를 통해 타이완과 일본과 소통의 가능성을 찾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바로 국제 공용어인 영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들은 영어는 발음과 뜻을 공유하지만 한자는 글로 쓰지 않으면 소통의 가능성을 찾을 수 없는 불완전한 것이다.

 

문자의 세계화, 세계의 공용 문자

로마자는 어느덧 세계 문자의 지위를 얻었다. 우리나라의 공식 문자는 한글이지만 알파벳은 한글과 더불어 함께 쓰인다고 봐야할 것이다. 한자는 점점 그 쓰임이 줄어가지만, 교육받은 세대에서는 로마자 알파벳을 매우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로마자를 쓰지 않던 모든 나라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중국과 같이 문자가 매우 복잡한 나라에서는 중국 문자를 가르치기 전에 로마자를 먼저 가르치고 로마자를 통해 중국 문자 읽기를 가르치며 로마자를 통하지 않고서는 IT기기로 중국어를 입력할 수 없다. 중국에서는 중국문자보다 더 중요한 문자가 로마자 알파벳인 것이다. 이렇듯 로마자 알파벳을 자국어의 IT기기 입력 방법으로 쓰는 나라는 많다. 일본어의 경우도 문자수가 많기 때문에 IT기기 입력에서 로마자를 쓸 수밖에 없다. 문자 체계가 복잡하고 문자수가 많은 나라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전 세계에는 로마자, 키릴문자, 아랍문자, 히브리문자, 중국 문자(옛 문자, 현대문자), 데바나가리, 타이문자, 티벳문자, 몽골문자, 일본문자, 한글 등이 쓰인다. 이들 문자 외에도 아라비아 숫자와 각종 문장 기호 그리고 @, #, %, &, * IT기기나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특수 기호 또는 특수 문자들이 전 세계적으로 폭 넓게 쓰인다. 이들 문자들 중 아라비아 숫자와 문장 기호 그리고 @%는 글을 쓸 때 일반적으로 쓰인다.

세계의 언어가 매우 많은 것에 비하면 사용되는 문자는 매우 적은 편이다. 문자를 독자적으로 만들어 쓰는 것보다는 문자는 기록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문화 간의 교류에서 중요한 매개체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같은 문화권에서는 문자를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가 한자를 버리게 된 것은 한자가 한국어 기록에 적합하지도 않고 불필요하게 많은 글자가 읽고 쓰는데 부담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한자를 버리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그 문제는 일본인들의 독특한 특성과 관련된 경우라고 봐야할 것이다. 베트남에서는 쯔놈(베트남식 한자)을 버렸고 로마자를 개량하여 쓰기 시작했고, 터키는 아랍문자를 일거에 버리고 로마자를 개량하여 쓰기 시작했다. 몽골은 몽골문자를 버리고 로마자를 사용했다가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다시 키릴문자로 바꾸었다. 모두가 불편한 문자를 버리고 효율적인 문자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 로마자와 한자를 쓰고 있다. 그래서 거리는 로마자와 한자식 병기된 많은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이 말은 한글이 국제화되지 못한 문자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며 배우기 쉽다고 강조하는 것이 결국 공허한 울림이라는 반증이기 하다. 한글처럼 아무리 배우기 쉬운 문자라 하더라도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 언어를 배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문자를 익히는 사소하고 낮은 턱에 걸려 그 언어에 대한 접근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문자가 없는 많은 언어들이 소통을 위해 문자를 받아들일 때, 문화적 공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정보와 문화 공간에서 사용되는 로마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로마자가 아닌 문자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민족주의에 기댄 감정적인 저항으로 버티며 자기 나라의 문자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 생활이 복잡한 나라에서는 문자 변화에 대한 욕망이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매우 쓰기와 읽기가 어려운 문자를 사용한다. IT기기에서 글을 선택하여 입력하는 중국의 젊은이들은 점점 쓰기를 어려워할 수밖에 없다. 사실 중국어는 고유의 문자를 쓰지 않고도 성조가 표시된 로마자만으로 기록을 할 수 있고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중국은 결국 로마자 중심의 쓰기 체제에서 중국 현대 문자를 병기하는 체제로 옮겨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에는 로마자만으로 표기되는 때가 오리라 추정할 수도 있다.

일본에는 중국보다 더 복잡한 문자 체계가 있다. 92 개의 일본문자와 2000여자의 중국식 한자 그리고 로마자를 공식적으로 익혀서 써야한다. 매우 보수적이고 교육이 잘 되는 일본에서는 드러나는 문제가 없지만 현대사회에서 그렇게 복잡한 문제 체제를 유지해 가는 것이 매우 특이한 경우라고 하겠다.

 

글쓰기의 문제, 점점 쓰기가 어려워짐

언어는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의 결과로 나타나며 주로 음성을 통해 표현되는데, 그 음성을 상징화하고 단순화한 문자 기호로 나타낸다. 따라서 문자는 음성 상징 말로 언어 발화에서 나타나는 모든 요소들은 생략한다. 심지어는 음성을 통해 명확히 드러나는 모음의 길이나 높낮이, 운율적 변화 등을 표시하지 않고 생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생략된 요소는 언어 사용자들의 직관에 관행에 따라 보충되는데, 그 직관과 관행은 공간과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의 많은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지만 수백 년 이상 독자적 문자 생활을 하면 문자 기록을 남겨온 언어들은 존재하는 언어들의 수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이다. 이들 언어는 나름대로 규칙에 따라 음성 언어를 기록한다. 그러나 그 음성 언어에는 그 나라 언어 사용자들이 공통적은 인식하는 많은 요소들이 생략되어 있어서 다른 언어 사용자들은 그 언어의 모든 특징을 다 익혀야만 그 언어로 기록된 문자를 읽고 이해할 수 있다.

언어는 변화한다, 대표적인 변화는 매우 짧은 기간에도 변화가 두드러지는 것인데 바로 음운의 변화이다. 이 음운의 변화는 규정된 표기법에 제대로 반영이 되지 않기 때문에 표기와 음운의 괴리는 점점 더 커진다.

영어의 경우는 ‘ghoti’의 예로 잘 알려져 있는데, ‘ghoti’‘tough’‘gh’, ‘women’‘o’, ‘nation’‘ti’를 따서 fisch와 같은 발음이 난다고 비꼬아 표현한 것으로 영어의 표기법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영어는 오래 세월 동안 음운변화를 겪어왔지만 표기법에 그 변화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서로 다른 시대의 변화가 쌓여서 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표기법이 된 것이다. 이런 경우는 프랑스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프랑스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프랑스의 ‘o’발음 표기가 o, ot, ots, os, ocs, au, aux, aud, auds, eau, eaux, ho, ö13가지나 된다고 말한다.

한자문화권에서는 더욱 심각한 편이어서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글 쓰는 연습이 적어지다 보니, 글 쓰는 법을 잊어서 한자의 획을 빼먹거나 잘못된 글자를 만들어 내고 잠시 더 생각하여 글을 쓰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타이완이나 싱가포르처럼 간자체가 전통적인 번자체를 쓰는 나라에서는 조금 더 심한 편이어서 싱가포르 같은 경우에는 번자체에서 간자체로 옮겨가는 추세이다.

일본의 상황은 더욱 심한 편이다. 일본에서는 가나 92자와 상용한자 2136자를 쓰는데 상용한자를 읽는 법은 두 가지 이상이다. 일본어의 문자 시스템은 중국보다도 어려워서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문자 체계를 유지하는 언어이다. 지식인들에게는 이런 상황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어린이들에 매우 큰 짐이 되고 문맹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복잡한 문자 체제 또는 표기법을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문맹률이 매우 높은 편이이다. 중국어권에서는 역설적으로 문맹률이 과거보다 더 높아 지고 있고 영어나 프랑스어 사용 국가에서도 어린이들이 제대로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는 일이 많다.

독일의 볼프강 슈타이니히 기센대학 독어학과 교수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어린이들이 쓴 작문을 분석한 결과, 요즘 어린이들이 40년의 어린이들보다 두 배 이상 철자법에 실수가 많았다고 보고하였다. 전체 독일을 비교한 것이 아니고 요즘에 이주민 자녀들도 많아서 엄격한 조사인지 더 생각해 봐야하겠지만, 인터넷 채팅을 비롯하여 가벼운 글쓰기가 유행하기도 하고 글쓰기보다 다른 분야에 치중하는 교육 풍토가 작용한 결과로도 보인다. 이런 현상은 충분히 다른 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문제는 무엇인지 해결책은 없는 것인지, 우리의 한국어가 처한 현실을 살펴보며 생각을 정리해 보자.

 

한국어가 처한 문제들

한국어 맞춤법의 문제

한국어는 음소를 이루는 문자의 개수가 적고 대체로 소리 나는 대로 발음을 적기 때문에 대중들의 문자 생활에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한국어는 음소문자를 쓰는 언어들 가운데서는, 음성과 표기가 잘 일치하는 나라가 아니다. 영어나 프랑스어에 비하면 잘 일치한다고 볼 수 있지만 독일어나 덴마크어에 비하여 보다도 음성과 표기가 매우 어긋나는 편이다. 이런 현상은 고유어의 경우 어원을 밝혀 적는 규정 때문이라 할 수 있고 한자로 이루어진 한자어가 한국어의 음성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각각의 한자에 따라 발음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 한자의 발음이 정착된 지 수 백년이 지났지만, 그 동안 음운이 변해온 것을 반영하지 못하고 과거의 발음에 기준을 두고 표기하기 때문에 생기는 모순이라 할 수 있다.

맞춤법을 바꾸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독일에서는 1998년에 맞춤법을 개정하였지만 다시 개정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독일어의 맞춤법을 바꾸는 일은 독일어를 표준어로 쓰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등 네 나라의 의회에서 최종 승인을 얻어야하는 매우 복잡하고 중대한 문제이다. 영어나 프랑스어도 맞춤법, 좀 더 정확히는 철자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학계와 일반 대중들 사이에 끊임없이 제기 되지만, 기존에 출판된 문서와 다른 맞춤법이 지식을 단절을 가져올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서 실효를 거둘 수 없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맞춤법 개정은 언어를 바꾸는 작업이 아니다. 유럽의 경우라면 철자법을 바꾸는 것이고 우리나라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단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고 문법의 틀을 느슨하고 다양하게 열어야할 것이다. 띄어쓰기 문제도 더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복수표준어를 좀 더 확대해야 하고 외국어 표기를 위한 한글 자모의 확장도 고려해야할 것이다.

좀 더 쉽고 효과적인 맞춤법으로 개정하지 못하는 이유로 문화적 혼란과 지식의 단절을 거론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을 걱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보다는 출판 시장의 활성화와 지식과 문화의 중개인이란 새로운 직업을 창출해 내는 긍정적 효과를 바라봐야 할 것이고, 쉬운 맞춤법으로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작업에 기대를 가져야한다. 늘 그랬듯이,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개혁에 반대를 하는 것은 기존에 쥐고 있는 것을 지키려는 나이든 권위자들의 욕심에 불과한 것이다. 과거의 지식을 팔아먹고 사는 학자들은 이에 대해 좀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한자어 사용의 문제

80년에는 대학을 다니며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며 독서를 하고 글을 쓸 때, 한국어에는 한자어에서 유래한 한자어가 매우 많았고 대학생이 리포트를 쓰려면 같은 소리 다른 뜻의 단어를 구분해 주기 위해서, 한자 지식을 과시하거나 공부하기 위해서 한자를 병기하거나 한자를 섞어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다. 특히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글을 쓸 때면 국어사전을 끼고 앉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던 것이 워드프로세서가 등장하면서 종이 국어사전 없이 바로 한자를 찾아 자동 변환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이런 현상을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워드프로세서 덕분에 한자를 직접 쓸 일이 없어서 한자쓰기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구태여 한자를 병기할 필요가 있을까? 요즘에는 국어국문학계나 사학계들에서 나온 논문들조차 한자를 병기하는 일은 매우 드물고 한자만으로 단어를 표기하는 일은 더욱 드물다. 이젠 워드프로세서에서 단어에 맞는 한자를 고르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과거에 한자는 한국어를 표기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요즘에 들어서는 한자를 쓰지 않고 문자 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는 것은 학계에서도 당연한 것으로 확인 하였다. 아직도 한자혼용 문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무도 그 말이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한국어의 문자 생활에서 한자 배제는 너무도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고 한자나 한문은 필요한 사람들이나 배우면 되는 것으로 판가름이 났다. 한자를 쓰지 않는 것은, 그것이 배우기 매우 어렵고 실생활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과거의 유산을 자신의 주관적 가치에 따라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과거에는 같은 소리 다른 뜻 글자들을 열거하며 한자 공부에 대한 필요성이 역설하었다. 그러나 실제로 같은 소리 다른 뜻 글자들은 그리 많이 않으면 혼동이 되는 것들은 다른 단어로 교체되어가고 있어서 과거보다는 혼동이 되는 단어들이 매우 적은 편이다. 또 한자를 알아야 구분할 수 있는 미묘한 어감의 차이가 있는 한자어 어휘를 예로 들지만, 그렇게 구분하기 어려운 한자어를 구태여 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외래어, 영어 사용문제

요즘은 과거 어느 때보다 영어에서 유래한 단어들이 많이 쓰인다. 그 중에는 사전에 외래어로 올라있는 생활용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영어들이 매우 많이 쓰이는 편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들어올 새로운 문물이 더 이상 없을 듯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문화 현상 또는 상품들이 들어오면서 그와 관련된 용어들을 의도적으로 영어나 외국어로 쓰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의식주에 걸친 모든 분야에 널리 퍼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우려할 것은 아니다. 어차피 한국어는 고유어와 한자어 그리고 외래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새로운 문화가 들어와 대체하는 것은 고유어가 아닌 한자어라는 것을 더 염두에 두어야한다. 오랫동안 써왔다고 해서 한자어가 늘 우리의 것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한국어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한자어를 억지로 몰아낼 수는 없다.

영어는 수백 년을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한자어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우리는 구태여 한자어를 지키기 위해 싸울 필요는 없는 것이고 그 싸움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지식과 학문의 중심이 중국에서 영미로 옮겨가는 현상을 바라볼 뿐이다. 다만 좀 노력해야할 것은, 이왕 쓰는 영어를 현지 발음에 가깝고 현지의 뜻에 가깝게 받아들여, 우리의 아이들이 영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할 때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뿐이다. 그와 더불어 사용할 필요가 없는 한자어를 고유어로 대체하는 작업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하고 한자의 원 뜻에 매여 변화해 가고 있는 한자어의 뜻을 되돌려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그치고 한자어의 뜻을 가르치기 위해 한자를 가르치는 어리석음에서 되돌아야할 것이다.

 

잊혀진 고유어 재활용 문제

대형 서점의 서가에는 우리글 바로 쓰기’, ‘우리말 되살려 쓰기등 한국어를 걱정하는 수많은 책들이 있다. 그런 책들은 우리말이 처한 현실을 개탄하면서 우리글을 바로 쓰고 잊혀진 고유어를 살려 써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우리말이 거의 모든 한국인들에게 자부심이 되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는 때가 있었던가. 오늘날 한국어와 한글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좋은 대접을 받고 소중히 다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말 더렵혀지고 있으니, 실체도 없는 학교 문법에 따라, 예절에 따라 그리고 아름다운 옛말을 살려 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삶의 질이 매우 낮은 나라에서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해서는 대단한 자부심을 갖도록 강요하는 것은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언어는 대중들의 것인데, 언어 사용에 대해 자격도 없이 언중들을 질타하는 것은 좀 더 생각해 볼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하는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언어는 늘 변하는 것이다. 변하는 것에는 발음과 단어, 관용적 표현이 우선 포함되고 장기적으로 문법까지 변한다. 변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인데, 자신이 좀 더 배웠다고 남에게 강요할 일이 아니다. 국어학자들이라면, 변해가는 현상을 분석하면 되는 일이고 지식인들이라면 자신의 언어를 가다듬어 가면 될 것이다.

 

인터넷과 한국어의 오염

요즘엔 인터넷 사용으로 인해 우리말이 오염되어간다는 말은 매우 흔하게 들린다. 90년대에 PC통신이 등장하고 컴퓨터 채팅이 일반화 되면서 채팅용어들이 늘어났고, 이 채팅용어들은 인터넷 채팅으로 이어지면서 더욱 확대되었다. PC통신 초기에는 이름대신 별칭인 닉네임을 부르고 부르는 말에 호격으로 ‘-을 사용한 것과 자판 입력을 편의성을 위해 축약, 생략 등이 일반적이었지만 핸드폰을 통한 문자 전달과 메신저를 통한 대화가 일반화되어 가면서 축약과 생략은 단어 차원을 넘어 음소 단위로 사용되었다. 빠른 의사소통을 위해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도 일반적이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리말을 오염을 사례로 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모든 시대에도 은어와 속어는 있었다. 한국어를 비롯한 언어란 것이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지만 특정 그룹의 대화가 다른 그룹에 전달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특정 그룹의 테두리를 떠나 의사소통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은어나 변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은어나 변말이 전체 사회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고 확산될 우려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청소년들이 인터넷 채팅을 통해서 그들만의 용어와 표현을 한국어가 오염된다고 하는 것은 노파심을 가진 사람들의 과도한 걱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용어나 표현도 한국어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것이고 청소년시기를 거치고 사회에 나가면서 적절한 수준에서 다시 바뀌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연어나 관용적 표현들이 오래되었다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누구나 쓰고 있는 말들 가운데서도 성적인 표현, 외모 비하 표현 등 오늘날 식자층이 우려하는 기준으로 봤을 때 문제가 있는 표현들이 많지만 원래의 뜻은 잊혀지고 관용적 표현이 된 것들이 많다. 과거의 우리말은 모두가 아름다웠고 오늘날 쓰는 우리말은 더러워지고 있다는 단순한 논리는 버려야할 것이다.


/이/성/실/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