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와 리코더(2)

2014.08.09 00:13

나모리코더 조회 수:82522

   리코더는 바로크 시대 중반 1700년대 초반까지는 트라베르소(바로크 플륫)보다 중시되었다. 트라베르소도 이미 오래전부터 쓰였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1700년대에 들어서면서 트라베르소는 특유의 부드럽고 풍부한 울림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의 관행으로는 관악기 연주자가 오보에, 리코더, 트라베르소 등을 같이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관악기와 현악기들 모두 다루는 것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리코더 연주자들은 트라베르소를 같이 연주하는 데 문제가 없었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연주자들이 리코더 대신 트라베르소를 선택하는 일이 많아 졌다. 

  만일 연주자가 리코더와 트라베르소를 분리시켜 따로 전문적으로 연주했다면 리코더가 그리 쉽게 잊혀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오보에나 플륫에 비해서 음역이 높기 때문에 낮은 음의 표현에 문제가 있었고, 리코더의 소박한 음색보다는 플륫의 화려한 음색이 대중의 호응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바하 역시 점차 트라베르소에 대한 매력에 눈을 떴다. 쾨텐 시절 이후로 칸타타에 리코더 보다는 트라베르소를 편성하는 일이 잦아졌고, 라이프찌히 시절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트라베르소만을 위한 작품을 쓰거나 다른 작품에서 트라베르소 작품으로 패로디하는 경우도 있었다. 오보에는 바하의 작품에서 늘 자주 등장했지만 오보에만을 위한 작품이 없는 것을 볼 때, 바하가 말년에 트라베르소를 중시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어쩌면 이전에 존재하던 오보에나 리코더를 위한 작품이 트라베르소나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으로 변개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바하는 점차 리코더의 역할을 한정시켰다. 라이프찌히 이전에는 브란덴부르크 협주에서 보듯이 경쾌하고 활발한 느낌으로도 사용했지만, 점차 우울하고 비장한 느낌을 표현하거나 새로운 음색의 가능성을 모색할 때 - 예를 들어 이전의 칸타타18번을 라이프찌히에서 연주할 때는 바이올린 오블리가토에 리코더를 중복 편성한 경우 - 에 사용했다. 

  마니피카트의 초판본에서는 리코더가 사용되었지만, 개정판에서는 리코더 대신 트라베르소로 대체하였다. 트라베르소는 리코더보다 음역이 낮기 때문에 트라베르소를 위해 전체 음역을 단3도 내렸고, 리코더가 편성되지 않았던 악장에도(첫곡과 끝곡) 트라베르소를 따로 편성했다. 이는 바하가 트라베르소를 리코더의 대체 악기로 여기는 것에서 나아가서 오보에와 더불어 오케스트라 편성의 기본적인 목관악기로까지 생각하였다는 것의 방증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곡의 조성을 바꾸는 힘든 작업까지 병행했으리라 여겨진다.

  바하가 늘 리코더를 트라베르소로 대체한 것은 아니다. 마태수난곡에서는 초기 버전(1727에서 1729년경)과 1936년의 자필 사본을 비교해 보면, 19번 곡(O schmerz)에서 두 대의 트라베르소를 두 대의 리코더로 교체했다. 바하는 이 비장한 느낌을 주는 이 악곡의 성격상 리코더가 더 어울렸다고 생각한 듯하고 마침 음역도 리코더에 맞았다.


/이/성/실/